68년 테트 공세와 소련?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1968년 1월 30일에 시작된 테트 공세와 소련은 어떤 관련을 가지는가?

러시아 역사가, 일라 기득 I.V. Gaiduk 은 테트 공세의 총괄 기획이 소련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큰 유혹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1)

테트 공세 동안 북베트남은 소련의 조언에 충실했고, 공격의 주요 대상이 사이공 체제였고, 미군과의 교전을 피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2)

테트 공세 작전 계획이 급속화된 것은 1976년 7월 응우옌치탄이 사망한 후였다. 1965년 이래 남베트남 무장투쟁 지휘 책임자로 치탄은 총공세 계획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또한 소련대사관 분석에 따르면, 그는 노동당 지도부 내의 대표적 친중파였다. 그는 모택동의 인민전쟁론과 어긋나는 어떤 전쟁계획도 반대했다. 이렇게 67년 7월에 노동당 지도부는 총공세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3) 

10월 30일
베트남 노동당 1인자 레주언이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그는 브레즈네프,코시긴,니콜라이 포드고르니와 베트남 정세에 대해 토론했다. 68년의 테트 공세와 관련된 베트남 정세를 논의한 것처럼 보인다. 

68년
1월 20일
테트 공세가 시작되었다. 

테트 공세에 대해서 베이징은 당황했다. 테트 공세는 모택동의 장기적 인민전쟁 이론과 모순되었다. 4) 테트 공세에서 베트남 공산주의가 실행한 전쟁은 베이징이 원하던 전쟁과 거리가 멀었다. 베이징은 일반적으로 낮은, 중등 수준의 전쟁을 베트남에서 원했다. 제한전,장기전을 통해서 미국을 베트남에서 묶어 둘 수 있고, 북베트남에 대한 중국의 지원의 중요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미국의 확전 유혹에 제동을 걸 수 있고, 잠재적인 미중 충돌을 막고, 중국이 모스크바와 북베트남에 대량의 첨단 무기를 제공하는 질 수밖에 없는 경쟁에 말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5)

테트 공세는 4월,8월의 2차,3차 공세로 이어졌고, 민족해방전선에 엄청난 손실을 안겨주었다. 민족해방전선군이 막대한 손실을 경험한 것은 2,3차 공세 때였다. 엄청난 손실에 직면해서 하노이 지도부는 재정비를 위해서 민족해방전선 부대를 캄보디아와 라오스 국경지역으로 후퇴하도록 명령했다. 이는 하노이의 치명적 실수였다. 부대 철수로 인해서 남베트남의 인구 밀집지역을 미국과 남베트남군에게 넘겨준 셈이었다. 6) 

테트 공세를 즈음해서, 응우옌치탄이 사망하고, 민족해방전선의 세력이 일시적으로 축소된 것은 하노이의 대미국 협상정책에 어떤 영향을 준 것인가? 레주언의 입장에서, 미국과의 파리평화협상 개시를 위한 주요 걸림돌은 응우옌 치탄과 민족해방전선이었다. 공교롭게도, 67년 7월에 응우옌치탄이 사망했고, 68년의 테트 공세로 민족해방전선이 큰 피해를 입었고,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다.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세력의 위축은 레주언이 마음놓고, 큰 반발을 두려워하지 않고 미국과의 평화협상을 시작할 수 있는 국내정치 여건을 조성했다고 할 수 있다. 1967-1968년 베트남내 평화협상 반대 세력이 위축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레주언이 의도한 것인가, 아니면 기묘한 우연인가? 이것이 크렘린을 웃게만들고, 모택동을 화나게 만들었다. 7)

68년 4월 3일
하노이, 폭격의 무조건 중단을 전제로, 미국과 협상할 준비가 되었다고 발표했다. 

하노이의 일방적 발표에 중국이 당황했다. 하노이 발표 이후 주은래가 당시 신병 치료차 중국에 있던 호치민에게 이에 대해 물었다. 놀란 호치민이 본인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 답했다. 명백히, 미국과의 협상을 결정하면서, 레주언의 베트남 노동당 정치국은 베이징의 호치민에게 보고하지도, 중국인들과 사전에 협의하지도 않았다. 8) 

하노이의 일방적 결정은 북베트남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쇠퇴를 보여주었다. 9) 베트남에서의 중국 영향력 쇠퇴란, 달리 말해 소련 영향력의 증가를 의미한다. 

테트 공세에서의 소련의 의도는 국제정치학의 피뽑기 전략으로 해석 가능하다.

피 뽑기 전략
Bloodletting
미어샤이머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강대국이 자신의 상대적 힘을 기르기 위한 전략 중에는 피 뽑기 전략이 있다.
피 뽑기 전략 Bloodletting 이란, 경쟁 국가에게 미끼를 던져서 전쟁을 하도록 만드는 적극적인 전략은 아니지만, 만약 경쟁국이 전쟁을 하게 된다면, 그 전쟁이 장기전이 되고, 비용이 들게 만들어, 그 국력을 소진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다. 따라서 이 전략에는 미끼가 필요없다 : 경쟁국은 스스로 전쟁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고, 이 전략의 주체가 되는 국가는 경쟁국이 국력을 되도록 많이 소진하도록 유도하고, 이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테트 공세를 통해서 소련은 평화협상에 반대하는 주요 세력인 민족해방전선과 미국의 전쟁 강경파에게 피 뽑기 전략을 시행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기진맥진해진 두 세력은 결국 베트남 평화협상에 동의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1) I.V. Gaiduk, The Soviet Union and the Vietnam War (Chicago 1996) 275.
2) I.V. Gaiduk, The Soviet Union and the Vietnam War (Chicago 1996) 275.
3) I.V. Gaiduk, The Soviet Union and the Vietnam War,139.
4) Qiang Zhai, China and the Vietnam Wars, 177.
5) Qiang Zhai, China and the Vietnam Wars, 178-179.
6) Ngo Vinh Long, "SOUTH VIETNAM", 80.
7) ROBERT K. BRIGHAM, Chapter 5 Vietnam at the Center, 106.
8) Qiang Zhai, China and the Vietnam Wars, 172.
9)Qiang Zhai, China and the Vietnam Wars, 174.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