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프랑스의 힘은 식민지에서 나온다."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강대국 프랑스는 베트남 식민지에서 시작된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에 대다수의 프랑스 정당들은 ()식민

주의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이 시기 정치적 토론에서 해외영토의 포기란 말은 전혀 언급이 되지 않았다. 정권에 참여한 어떤 정당도 해외영토의 주민들에게 완전한 독립을 선사할 것을 권고하지 않았는데대다수의 급진파와 일부 사회당원과 공산당원은 제국의 부홍의 시기에 적응하기 위해 과거 그들이 견지했던 '()식민주의적 신념을 포기하였던 것이다.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우파에 이르기까지 제국주의적 담론은 그 동기나 미래의 전망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였지만정치계 전반에 널리 퍼져있던 주된 생각은 프랑스를 다시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식민지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것이었다. 프랑스 정치인들에게 식민지는 국가적 힘과 자부심의 필수요인이었으며 미래의 가장 확실한 보증과도 같았던 것이다.


2차 대전의 시기는 정치인들을 포함한 프랑스인들의 제국주의적 감정을 더욱 더 강화시키고 공고히 했다. 전쟁 직후프랑스인들은 프랑스가 전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전승국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은 식민지 덕분이었다고 생각하였다. 프랑스 군대 내에서의 식민

지 병사들의 역할과 그들이 프랑스 해방에 이바지한 공로는 당시 정부와 모든 언론에 의해 칭송되었다. 19451010일부터 1111일까지 한 달의 기간 동안 식민지부는 식민지 제국이 프랑스의 재건을 위해 기울이고 있는 군사적경제적 노력을 기념하여 프랑스 해외영토의 달행사를 거행하기도 하였다, 프랑스 국민들은 그들의 식민지가 피폐해지고 파괴된 국가의 재건을 돕고 프랑스의 위대함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요인이 되기를 기대했다. 이와 같이 해외의 식민지들은 프랑스 본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프랑스가 강대국으로 남는 것을 가능케 해주는 수단으로써 새롭게 등장하였던 것이다.

 

-출처


이재원 2004. 프랑스 공산당과 베트남의 "식민지해방전쟁", 1945-1954. 서양사론, 83(0),157-158.

 

전후 프랑스는 강대국으로 남길 원했고,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식민지를 유지해야 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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