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의 냉전과 영미 관계의 위기?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제프리 와너 GEOFFREY WARNER의 관련 논문을 다음을 주장했다.

Geoffrey Warner (2011) Anglo–American Relations and the Cold War in 1950, Diplomacy & Statecraft, 22:1, 44-60

1950년은 냉전의 위기한 한 해였고, 영국과 미국이 냉전에 대해서 견해 차이를 주장했다. 가장 위험한 위기가 발생한 곳은 극동이었다. 

영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승인했고, 이는 공산주의 체제가 중국 대륙을 통제하기 있을 뿐만아니라 모택동 세력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소련에 연결된 것은 아니라고 영국이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미국은 중공 승인을 거부했고, 중국이 소련의 위성국가라 간주했고, 중국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상황은 50년 6월의 한국전쟁 발발로 더욱 악화되었다. 미국과 영국이 남한에 대한 북한의 침략을 격퇴해야 한다고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갈등의 확대를 원치 않았다. 반면 미국은 이번 참에 중국까지 혼내주려 했다. 한국 전쟁으로 군비증강 속도가 빨라졌고, 미국은 서독 재무장을 선호했다. 

11월에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자, 12월 초에 영국 총리 클레멘트 애틀리가 워싱턴을 방문했다. 당시 영국인들은 미국인들이 이미 세계대전이 필연적이라 결론내렸다고 생각했다. 영국은 가능하면 제3차 세계대전을 막으려 했다. 

이 과정에서 1950년의 사건들은 영미의 특별한 관계에서 영국이 종속적 지위였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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