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중립이 케네디의 베트남 정책을 실패로 만들었다!"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케네디 취임과 더불어 시급한 문제로 부상한 것은 라오스였다. 아이젠하워는 후임자 대통령에게 군사 개입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케네디의 기본 인식은 라오스는 큰 힘을 들여서 개입할 만 한 가치가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후 라오스 문제는 결국 군사개입 없이,  1년 이상 진행된 제네바에서 열린 라오스 문제 처리를 위한 국제회담 (1961년 5월 16일- 1962년 7월 23일) 으로 라오스 중립화가 결정 되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쇼의 논문에 따르면, 라오스 중립이 케네디의 베트남 정책에 치명적이었다고 한다. 

남베트남에서의 반게릴라전의 효과적 수행을 위해서, 라오스가 북베트남의 침투로부터 안전해야만 했다. 하지만 케네디는 중립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북베트남의 라오스 침입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대통령 특사 애버럴 해리먼이 케네디에게, 라오스 중립이 가능하다고 조언했고, 제네바 회의를 통한 외교적 해결이 무해할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남베트남의 고딘디엠은 라오스 중립에 대해 정면으로 반대했고, 해리먼의 반감을 샀다. 이 때의 반감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이후 1963년 미국 정부의 디엠 제거 작전에서 해리먼은 당시 국무부 차관으로 로저 힐스먼,조지 볼,마이클 포레스털과 함께 선봉에 섰다.

중립의 라오스에 호치민과 보구엔지압은 이른바 호치민 통로를 만들었고, 통로를 통해서 북쪽의 인원과 물자가 남쪽의 베트콩에 전달되었다. 

이런 점에서 라오스 중립이 남베트남을 위험으로 몰았고, 결국 케네디의 베트남 정책 실패의 배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G.D.T. Shaw (2002) Laotian 'Neutrality': A Fresh look at a Key Vietnam War Blunder, Small Wars & Insurgencies, 13:1, 25-56,


이런 면에서 보면, 닉슨과 키신저 시대의 미국의 라오스,캄보디아 중립 침해는 재평가의 여지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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