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년,"동남아 냉전의 중심은 베트남이 아니었다."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앙쩡구안(Ang Cheng Guan)에 따르면,

베트남전이 동남아시아 냉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냉전 내내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1960년 말과 1961년 초에 그랬다. 남베트남이 아니라 라오스가 국제사회의 관심사였다. 

당시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후임의 당선인 신분의 케네디에 조언한 것은 만약 라오스가 공산화되면, 남베트남,캄보디아,태국,버마가 뒤따를 것이라 경고했다. 하지만 아이젠하워가 케네디에게 조언한 것은 모호했다. 확실한 것은 케네디의 전임자가 라오스를 동남아의 핵심 지역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베트남은 부차적이었다.

실제로 1960년, 특히 1960년 8월 9일 콩레의 쿠데타 이후 1962년 여름까지, 라오스 사태가 남베트남의 무장 투쟁을 가릴 정도의 관심을 받았다. 콩레 쿠데타 이후 모스크바가 적극 개입한 곳은 남베트남이 아니라 바로 라오스였다. 모스크바는 베트남 문제의 군사적 해결에 단호히 반대했다. 

1961년 10월 케네디의 특사 맥스웰 테일러가 남베트남을 방문할 때까지, 베이징도 베트남이 아니라 라오스에 더 관심을 가졌다. 1년 이상 진행된 제네바에서 열린 라오스 문제 처리를 위한 국제회담 (1961년 5월 16일- 1962년 7월 23일) 으로 라오스 중립화가 결정된 이후 베트남이 관심의 중심지가 되었고, 라오스가 베트남의 그림자에 가려지게 되었다. 


Ang Cheng Guan,The Cold War in Southeast Asia. In The Oxford Handbook of the Cold War. : Oxford University Press.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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