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 파리협상과 닉슨 그리고 티에우...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키신저와 티에우

1972년
 
10월 8일 파리에서의 미국 키신저와 북베트남의 레득토의 협상이 분수령이었다.

양국은 휴전을 위한 중요한 합의에 도달했다. 하노이가 처음으로 사이공의 티에우 체제의 타도를 전제 조건으로 달지않고, 체제의 잔류를 조건으로 한 정치적 제안을 했다. 

문제는 티에우였다. 닉슨은 티에우가 파리 협상에 비토를 행사할 것을 우려했고, "꼬리가 개를 뒤흔들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협상안을 가지고 키신저가 10월 23일 사이공에 가서, 티에우와 회담했다. 티에우가 반발했다. 그는 미국인들이 공산주의자들이 사이공에서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북베트남군의 남부 잔류를 인정할 수 없으며, 북위 17도 선에서 남북을 가르는 비무장지대가 두 지역의 안전한 경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티에우의 불만은 다음이었다. “나는 예스맨이 아니며, 꼭두각시는 더더욱 아니다. 나는 미국이 우리 베트남 국민들에게 짐을 지우려는 어떠한 사안에도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나는 남베트남의 운명이 두 가지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하나는 북베트남 병력이 남베트남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국민화해협회로 위장한 연합정부 문제였다. 키신저는 우리도 모르게 공산주의자들과 협상했다. 미국은 국내문제 해결을 위해서 베트남을 버리려 한 것이다. 이것은 현실정치에서 일어나는 실수가 아니라 미국이 고의적으로 옳지 못한 정책을 선택한 결과였다.”


말하자면, 사이공은 파리의 합의안 전체를 무위로 돌리고자 했다.

하지만, 키신저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북베트남군의 철수는 10년간의 전쟁으로도 얻어내지 못했다. “우리는 철수를 최종협상 조건으로 주장할 수 없었다.”


- 참고,

Stanley Karnow, Vietnam: A History, 650.


티에우의 반발에 대한 닉슨과 키신저의 해법은 무엇이었나?

몸통을 위협하는 꼬리를 잘라야한다? ㅠㅠ

티에우는 영국 총리 파머스턴의 격언을 몰랐나? 

“국제정치(國際政治)에는 영원한 우방(友邦)도 없고, 영원한 적(敵)도 없다. 오로지 우리의 이익(利益)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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