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베트남전 미국 워게임의 결과는?"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1964년 8월의 통킹만 사건 이후 존슨 정부는 북베트남에 대한 후속 보복전략을 고안하려 했다. 

9월의 워 게임 war game 은 이런 상황에서 진행된 것이었다. 

벌써 1년전에 승리 비용 계산을 위해서 미국 합참이 작전명 시그마1로 불리는 워게임을 진행했다. 그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 최소 50만의 미국 전투병이 필요한 것으로 보였다. 

9월에 그들은 시그마2 를 진행, 북베트남에 대한 공습의 잠정적 영향을 평가하고자 했다.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국가안보보좌관 맥조지 번디, 국방부 차관 맥노턴, 합참의장 얼 휠러, 공군의 커트스 르메이였고, 그들이 두 개의 팀으로 나누어, 각각 미국과 북베트남의 입장에서 전쟁 시물레이션을 했다. 다시 결과가 좋지 않았다 : 미국의 엄청난 압박에도 공산주의자들을 막을 수 없었다. 

결론은 자명했다. 전형적인 농촌사회 중심의 북베트남은 통일의 대의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된 지치지 않는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고, 커티스 르메이가 주장한 것처럼 "석기시대"로 되돌아 갈 수도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도 독일도 폭격으로 굴복하지 않았다. 일본은 원자폭탄 한 방으로 백기를 들었지만, 핵무기는 베트남전의 대안이 될 수 없었다. 

1964년 말, 워게임 결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정책결정자들은 북베트남 공습 계획을 계속 추진했다.   


-Stanley Karnow, Vietnam: A History, 399-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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