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선전포고없이 전쟁을 하는 방법은?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63년 11월 미국 정부는 남베트남 정국 안정을 위해서 고딘디엠을 제거했지만, 쿠데타 이후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린든 존슨의 미국은 상황타개를 위해서 직접개입하는 방안을 고심했지만, 문제는 의회 동의였다. 

미국 헌법에 따라, 군의 통수권은 대통령에게 있었지만, 전쟁의 선전포고 권한은 의회에 있었다. 

1964년 초, 북베트남 타격을 미국이 하기 위해서 의회를 통한 공식적 선전포고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큰 사회적 분란이 예상되었다. 존슨은 국내의 소동이 싫었다. 

윌리엄 번디가 존슨에게 제안한 묘책이 바로 1955년 아이젠하워의 전례였다. 그것은 바로 의회결의안이었다. 1955년 1월, 아이젠하워는 상원,하원의 전폭적 지지 결의안을 얻었다. 상하 양원은 거의 만장 일치로, 아이젠하워에게 대만을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만큼" 미군을 배치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당시 린든 존슨은 상원의원 신분으로 신장결석 수술을 위해 입원 중이었는데, 결의안 지지를 위해서 궐석 지지 투표를 했다. 

64년 초, 통킹만 사건이 발생하기 몇 개월 전에 , 국무부 정책기획국 국장 로스토의 주도 하에, 베트남 관련 결의안은 이미 작성 중이었고, 6월 초에 초안 작성이 끝났다.  


- Stanley Karnow, Vietnam: A History, 360-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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