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워싱턴에서 베트남의 위상은?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장관 출신이 한 나라의 대사가 되는 것은 좌천이라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1964년 6월 워싱턴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6월,

 - 롯지가 미국 대선 공화당 입후보를 위해서 대사직에서 물러났다. 존슨이 후임자를 물색했다. 딘 러스크, 맥나마라 그리고 국가안보보좌관 맥조지 번디가 자원했다. 법무장관 출신의 로버트 케네디도 “베트남은 미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이고, 나는 당신에게 봉사할 준비가 되었다.”는 메모를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결국 후임대사로 지명된 것은 합참의장 출신의 맥스웰 테일러였다. 

Stanley Karnow, Vietnam: A History, 345.

같은 달에,
 
윌리엄 웨스트모얼랜드 William Childs Westmoreland 베트남 군사 원조 사령부 사령관이 되었다. 

이렇게 전쟁의 미국화를 위한 인선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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