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 고딘누는 미국의 뒤통수를 치려 했는가?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고딘누

1963년 고딘디엠 독재에 저항하는 불교신도의 시위사태로 남베트남 정국이 불안했다. 미국은 디엠에게 개혁을 요구했지만, 독재자는 이를 거부했다. 

이에 사이공의 미국 대사 롯지는 남베트남의 장군들을 규합하여, 쿠데타를 하려했다. 

군부의 쿠데타 음모를 감지한 디엠의 동생 고딘누는 하노이의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아서, 미국의 압력을 무력화하려 했다. 누는 중립국 감시단의 폴란드 대표인 미넬리와 접촉했다. 

미넬리는 하노이 지도부와 접촉이 가능했다. 그가 1963년 초, 하노이에 첫 방문했을 때, 호치민과 그의 동료들은 디엠과 미국인의 갈등에 주목했다. 그들은 사이공과 워싱턴 간의 쐐기 밖기를 원했다.  마넬리에 따르면 당시 하노이의 정책은 "우리의 주적은 미국이다. 그들을 몰아내면, 우리는 디엠과 누를 후에 상대할 수 있다." 였다. 

디엠과 특히 누가 하노이와의 타협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들이 반공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남북 베트남 간의 또 한명의 중개인은 부 호이 Buu Hoi 였다. 호이는 호치민의 전 보좌관으로 파리에서 살았다. 호이는 샤를 드골과 안면이 있었다. 

당시 샤를 드골은 인도차이나 중립화를 주장했다. 호이는 드골에게 중재를 부탁했고, 그는 사이공의 프랑스 대사 로제 라루에트 Roger Lalouette 에게 디엠과 누에게 드골의 구상을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디엠 형제가 협력적으로 나오자, 프랑스 대사는 미넬리와 접촉, 하노이 공산주의자들에게 남북 베트남의 경제,문화 교류에서 시작하여, 정치 협상으로 이르는 계획을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넬리가 요청을 북베트남 총리 팜반동에게 전달했고, 총리는  일단 미제만 물러가면, "우리는 어느 베트남인과도 협상할 것"이라 답했다. 

미넬리가 사이공으로 돌아와서, 프랑스 대사와 함께 고딘누를 만났다. 9월 2일 누의 집무실에서, 폴란드 대표가 팜반동의 메시지를 전했다. 누가 관심을 보였다. 

미넬리는 누의 답변을 가지고 하노이로 다시 갔다. 하노이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주적이 미제이지 디엠 체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심지어 미넬리가 누에게, 만약 남베트남이 미국과 충돌한다면, 북베트남의 도움을 기대해도 좋다고 전하라고 말했다. 

불행하게도, 미넬리는 이 답변을 사이공에 전달하지 못했다. 그가 사이공에 돌아갔을 때, 고딘디엠과 누가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 Stanley Karnow, Vietnam: A History, 291-292.

두이커는 누의 행동이 미국 협박용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고딘누는 미국 백악관이 우려할 행동, 그가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대표와 협상 중이며, 이 비밀 협상을 언론에 공개했다. 마넬리에 따르면, 하노이가 고딘누에게, 남북 협상을 위해서 미국이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일단 미국만 떠나면, 모든 문제가 협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디엠 체제가 비밀 협상에 진지했든지 아니든지, 워싱턴은 긴장할 수 밖에 없었고, 사이공이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할 의사가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당시 고딘누는 한 측근에게, 그는 워싱턴에 사이공이 미국의 꼭두각시가 될 의도가 없음을 과시하려고 협상을 진행 중이라 말했다고 한다.

Duiker, William J., Sacred war : nationalism and revolution in a divided Vietnam,McGraw-Hill,1995.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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