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 제네바 회담과 주은래?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1954년 4월 26일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제네바 회담이 개막되었지만, 곧 교착상태에 빠졌다. 

협상의 돌파구를 연 것은 프랑스 총리 피에르 망데스-프랑스와 중국의 주은래였다.

주은래는 당시 56세로, 뛰어난 외교술을 과시했다. 

그는 프랑스에 대한 특별한 애착을 가졌다. 그는 젊은 시절을 파리에서 보냈다. 

중국은 방금전의 한국전에서 백만 명의 희생을 당했고, 전쟁은 중국 국경 부근까지 확대되었다. 

제네바에서의 주은래의 목표는 미국의 인도차이나 개입의 명분을 제공하지 않고, 중국을 다시 위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프랑스를 인도차이나에 잔류시켜, 미국을 배제시키는 협상을 원했다. 

이를 위해서는 베트민의 희생이 필요했다. 또한 중국의 외교정책의 지난 수천년 동안의 전통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분열로, 이를 통해 중국 영향력 행사를 용이하기 만드는 것이었고, 주은래는 이 전통에 충실했다. 따라서 분단 베트남은 통일 베트남 보다 중국의 국익에 부합했다. 특히 통일 베트남은 2천년 동안 중국과 갈등관계였다. 또한 중국은 라오스와 캄보디아에 대한 베트남의 야심을 억제시켜야 했다. (캄보디아를 두고 이후 중국과 통일 베트남이 전쟁을 하게 된다.) 

제네바에서 주은래의 협상원칙은 "평화공존"이었다.

Stanley Karnow, Vietnam: A History, 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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