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 아이젠하워, "봉쇄냐,롤백이냐?"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아이젠하워와 덜레스

봉쇄가 선을 그리고 선을 넘지 못하게 막는 것이라면, 롤백은 적의 선 안으로 침투해서 반격하는 것이다. 봉쇄가 방어적이라면, 롤백은 적극적이며 공격적이다. 


냉전의 역사에서 1953년에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전쟁의 휴전이 조인되었고, 스탈린이 죽었고, 아이젠하워와 존 포스터 덜레스가 워싱턴의 주인이 되었다.

새로운 미국 공화정 정부는 공산주의 대한 군사적 공적 자세를 주장했고, 롤백 rollback과 해방이라는 위협적 수사를 동원했다. 

이러한 수사적 공격성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는 곧 트루먼 정부의 외교정책의 내용을 유지할 것임을 드러낼 것이었다. 즉 유럽의 동서 분단의 수정이 아니라 현상유지의 방어가 아이젠하워와 덜레스의 외교정책이 되었다. 

가령, 1953년 6월, 집권 5개월 차에, 소련 전차가 동베를린의 노동자 봉기를 진압했을 때, 미국 정부는 유엔을 통해 비효과적인 항의만 했고, 동독에서의 수동적 저항만을 장려했다. 

핵무기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아이젠하워 정부는 자제했고, 중부와 동부 유럽이 소련 영향권임을 사실상 인정했다. 

1952년 대선 선거운동에서, 공화당은 단순한 봉쇄정책의 비도덕성을 주장했고, (봉쇄만으로는 98% 부족하다.), 독재의 공산주의에 대한 유화에 분노했다. 당시의 많은 유권자들은 모스크바에 동정적인 민주당과 달리, 새 공화당 정부가 공산주의에 강하게 반대하고, 소련 지배하의 불쌍한 동유럽 국민들을 서양 품으로 되돌려 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롤랙 (즉 반격)은 결코 현실적 대안이 아니었다. 일단 백악관에 입성하자 아이젠하워는 전임자 트루먼과 유사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Mayers, David. "Eisenhower's Containment Policy and the Major Communist Powers, 1953-1956." The International History Review 5, no. 1 (1983)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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