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뮌헨의 저주와 65년의 베트남 비극".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인간은 (과거의) 실수를 통해 새롭게 실수하는 법을 배우기 마련이다." "Men always learn from their mistakes how to make new ones.“

-영국의 역사학자 테일러

38년의 뮌헨에서 서양은 히틀러를 비스마르크로 오해하면서 유화적이었다면, 탈식민주의의 바람에 편승한 베트남 민족주의에 대해서 65년의 딘 러스크는 뮌헨의 교훈을 적용하면서, 그는 호치민을 히틀러로 간주하는 실수를 범했다. 38년의 히틀러가 비스마르크가 아니었던 것처럼, 65년의 호치민은 히틀러가 아니었다. 

핼버스탬에 따르면, 1965년 미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을 사로잡은 것은 1938년 뮌헨의 교훈이었고, 따라서 그가 책임을 맡은 미국 국무부의 정책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38년의 뮌헨은 딘 러스크의 사고체계 속에서 어떻게 1965년의 베트남과 연결되었는가?

[뮌헨 협정]
[뮌헨 협정과 딘 러스크]

딘 러스크는 딘 애치슨의 사람이었다. 그는 선배들이 세운 정책을 수행하는데 냉정했고, 능숙했으며, 동요되지 않고 ,완강했다. 위대한 냉전 정책의 기본 사항이 결정된 것은 바로 그때 였다. 정책 설계자들에게 세상은 전쟁 이전에 존재했던 세상과 매우 유사해 보였다.전체주의의 힘이 여전히 서유럽을 위협하며 작용하고 있었고,국경선이 설정되어야 했으며, 오직 무력만이 효력을 발휘했다. 뮌헨의 교훈은 여전히 아주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미국의 힘과 인도력, 지도력을 동반하는 상호 안정을 통해서 서유럽 세계는 1939년에 적용되었던 대답들을 건네 주었지만, 그것들은 거부되었다. 이 시기에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배웠지만, 당시 그것들은 거부되었지만, 실수는 반복되지 않았다. 영국을 대신한 미국은 세계의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고 보호했다. 이때의 경험이 젊은 딘 러스크에게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는 미국은 착수한 것이 무엇이든 모두 성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은 위대한 중도주의자로서 정치적 힘을 갖고 있었다. 그 힘에 직면했을 때, 그리고 더 의미 있게 공정하고 명예로운 민주주의의 정의에 직면했을 때 세상의 전체주의는 그것이 지닌 힘을 존중해야 했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최고의 인재들, 519.


히틀러는 죽어서도 한동안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38년의 뮌헨 바이러스를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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