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슈 리지웨이를 추모하는 방법은?"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한국전쟁의 영웅 매슈 리지웨이는 1993년 7월 26일에 사망했다. 

그를 추모하며, 케네디 정부에서 국무부 극동문제 차관보를 역임한 로저 힐스먼 ROGER HILSMAN 이 추모 기사를 뉴욕타임스에 8월 1일에 투고했다.

제목 : 리지웨이는 미국이 베트남에서 손을 떼기를 원했다. 

지난 7월 26일에 사망한 매슈 리지웨이는 조지 마셜에 버금가는 우리시대의 위대한 군인-정치가 였다. 

리지웨이 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투 지휘관으로 두각을 보인 후에, 한국에서 중공군 개입 이후의 재앙을 수습했고, 엄청난 업적을 보였다. 

이후, 육군 참모총장으로, 그는 두번 째 재앙, 즉 디엔디엔푸에서의 프랑스 패배 이후 미국이 베트남에 개입하는 것을 가까스로 막았다. 

1965년, 미국이 베트남 개입을 다시 고심할때, 백악관은 리지웨이의 조언을 구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백악관은 그가 팬타곤 혹은 워싱턴에서 환영받지 못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미국의 비극이 바로 거기 있었다. 당시 미국 지도자들 중 아무도 정치적 목표와 군사적 목표의 관계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로저 힐스먼.


- 핼버스탬에 따르면, 존슨은 임기의 마지막 해인 68년에 가서야 리지웨이의 자문을 결국 구했다고 한다. 

1965년 존슨 대통령이 리지웨이의 자문을 구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이미 그의 견해를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1968년 개입을 제한하는 문제를 두고 격론이 벌어졌을 때 리지웨이 역시 대통령의 호출을 받았다. 그 순간 그에게는 1954년의 단순함과 명료함, 굳은 의지와 1965년의 정책 결정에서 보였던 불분명함 등이 동시에 존재했다. 
리지웨이가 존슨과 부통령 험프리 를 만나 대화를 나눌 때 전화벨이 울렸다. 존슨이 전화를 받았고, 리지웨이 는 험프리에게 이 전쟁에서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다고 했다. “그게 뭐죠?” 험프리가 물었다.

"웨스트모얼랜드 장군이 대체 무슨 임무를 맡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리지웨이가 말했다.

"좋은 질문입니다. 대통령께 물어보시죠." 험프리가 말했다. 

그러나 전화를 마치고 돌아온 존슨이 자신의 어려움과 사방에서 밀려드는 압박을 늘어놓는 바람에 그 질문은 할 수 없게 되었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최고의 인재들, 글항아리, 2014.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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