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복 사건과 평양 그리고 베트남전?"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1968년 12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며 희생당한 이승복 사건과 베트남전은 관계가 있을까?

1967년,1968년 남북간의 교전은 각각 400건, 500건이었다. 

1967년 12월 주한미군 사령관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기자회견을 통해서 한반도에서 게릴라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1968년 1월 21일에 , 김신조 사건이 발생했다. 1·21 사태(-事態)는 김일성의 명령으로 1968년 1월 21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소속의 군인 31명이 대한민국의 청와대를 기습하여 대한민국의 대통령 박정희를 제거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1968년 1월 23일, 북한 원산 앞 공해 상에서 해양 조사선으로 위장한 미군의 정찰함 푸에블로호가 나포되었다. 

그리고 68년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이 발생, 이승복이 희생되었다.

왜 평양은 대남 게릴라 무력도발을 강행했고, 이는 베트남전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냉전사의 관점에서 1968년 1월은 뜨거웠다. 김신조 사건,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그리고 베트남에서는 테트 공세가 있었다. 

이 사건들은 평양과 하노이의 정책결정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 왜 평양은 대남 무력도발의 수위를 올리기로 결정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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