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 고딘디엠 몰락과 하노이의 전망?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남베트남 독재자의 최후- 고딘디엠, 1963년 11월


1961년 11월 남베트남과 워싱턴의 정세가 급변했다. 11월 2일 사이공에서 쿠데타로 고딘디엠과 고딘누가 사망했다. 서거 소식에 놀란 케네디는 “9년간 공산주의와 싸운 디엠은 최소한 암살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디엠의 과거가 케네디의 미래가 된 것인가. 11월 22일 케네디도 암살의 운명을 맞았다. 

하노이의 베트남 노동당 지도부는 11월 이후 정세에 대해 어떻게 전망했을까? 12월, 노동당은 중앙위원회 제9차 전원회의 소집했다. 그들은 어려운 선택에 직면했다. 

62년 여름 레주언의 전망은 낙관적이었다. 62년 7월 레주언은 응우옌반린에게 보낸 서신에서, 워싱턴이 디엠 교체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고, 그런 변화가 미군 철수 협상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 

하지만, 케네디 암살 직후, 존슨은 전임 정부의 베트남 정책을 이어갈 것을 주장했다. 따라서 남베트남 군사 쿠데타로 미군 철수 협상이 시작될 가능성은 낮았다. 사이공의 정정 불안으로 미국이 철수의 유혹에 직면할 것이란 하노이의 전망이 빗나갔다는 것이다. 장기적 전망은 불확실했다. 남베트남의 새 통치자가 남부에서의 반군 활동 증가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노동당 중앙위의 결의안은 워싱턴은 둘 중 한 방식으로 대처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선 존슨 정부가 전임 정부는 특수전 special war 을 지속한다. 이 상황에서, 미군은 자문 역을 맡는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이 확대 개입하여 미군 전투병을 보낼 수 있었다. 

하노이는 후자의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하노이가 게릴라 세력이 막강 미군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워싱턴이 지상군 파병이라는 강수를 들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 시나리오는 하노이가 받아들 수 없었다. 2)

1) Duiker, William J., Sacred war, 160.

2) Duiker, William J., Sacred war, 161-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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