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북베트남의 친중화 속의 반-중국 목소리?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팜반동과 호치민

공산주의 사회에서 당노선에 반대하는 주장을 하는 것은 목숨을 건 위험한 행동이었다. 


미국과의 전쟁을 앞두고, 하노이 지도부 내부에서 논쟁이 치열했다. 친중파와 친소파. 

역사가들은 하노이 지도부의 친중화는 1962년 이후 가시화되고, 1964년 말 하노이는 중소분쟁에서 사실상 중국 편을 들게 되었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친중화 대세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중 목소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북한이었다면 반중,친소파는 아오지행이 분명했을 것이다. ㅠ

역사가 브리검에 따르면, 1964년 하노이의 고위 지도부 중에 반중파가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소련 수정주의의 언어를 구사했다. 

6-7월 북베트남 의회 연설에서 팜반동은 다음을 주장했다. 남베트남을 돕는 최선의 길은 북부를 경제,사회적으로 강화시키는 것이다. “모스크바의 우리 형제들이 여전히 사회주의 진영을 이끈다. 우리는 그들의 지도와 원조가 필요하다.”

당시 노동당의 한 간부는 팜반동에 동조하며, "중국이 베트남이 분열되고 약해지기를 원했다. 그들은 우리를 미국과의 오랜 전쟁으로 몰아가고, 우리가 피를 흘리기를 원했다."

전쟁 후에 한 다른 간부는 "중국은 베트남전의 조기 종전을 원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베트남 혁명 세력의 약화를 원했을 뿐만아니라 베트남을 돕는다는 선전 목적을 위해서 전쟁이 오래 지속되는 것을 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1964년 11월 호치민이 모스크바가 사회주의 진영의 지도를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모택동의 반응은?ㅠㅠ)

하노이의 친중화 속에서도, 호치민,팜반동 그리고 보구엔 지압은 친소파로 분류되었다. 그들은 왜 숙청되지 않았을까?


참고- 

ROBERT K. BRIGHAM, Chapter 5 Vietnam at the Center-Patterns of Diplomacy and Resistance, International Perspectives on Vietnam,Texas A&M University Press; 1st edition (January 1, 2000)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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