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년 소련대사가 베트남에 대해 미국에 제안한 것?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도브리닌- 주미국 소련대사 

1968년

3월 10일
애버렐 해리먼이 소련대사 도브리닌을 집으로 초대, 3시간 반 동안 점심을 같이 했다. 해리먼은 곧 북베트남과의 파리 평화협상의 미국 대표가 될 것이었다.

해리먼이 대사에게, 소련은 전쟁이 끝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크렘린은 미국이 베트남 분쟁에 말려드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가?라 물었다. 도브리닌은 소련 정부는 전쟁이 끝나길 원한다고 답했다. 왜냐하면 미소 양국이 더 중요한 지역에서 타협할 문제가 많이 있기 때문이었다. 해리먼은 “우리는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재건과 발전을 위해 협력할 수 있다.”고 말하자. 소련 대사는 확답은 피했지만, “우리는 나란히 걷고 있고, 지역에서 붉은 중국이 확장하는 것에 맞서 지역의 역량강화를 시도한다.”고 말했다. 

Memorandum of Conversation, Mar. 10, 1968 ; LLOYD C. GARDNER, Chapter 2, Fighting Vietnam -The Russian-American Conundrum, International Perspectives on Vietnam,Texas A&M University Press; 1st edition (January 1, 2000) , 52.

68-69년 베트남을 둘러싼 미국-소련-중국의 3각관계를 보면,

소련은 미국과 손을 잡아 중국을 치려했고,

소련의 압박에 직면한 중국은 미소 양국의 양면 동시 공격의 위험에 직면해야 했다. 

말하자면, 중소 분열의 심화로 , 중소 양국은 모두 미국과 손을 잡아 상대방을 견제하려 했다. 

이 역사적,전략적 기회를 잡은 것이 바로 닉슨과 키신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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