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 프랑스, 망하는 나라의 외교란?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1954년 베트남의 운명을 논하기 위한 국제회의가 제네바에서 열렸다. 

전쟁 당사국 프랑스 외무장관 조르주 비도는 협상에 자신이 있었다. 주스위스 프랑스 대사 장 쇼벨에 따르면, 비도는 중국과 직접 협상을 준비했다. 

비도의 협상 카드는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프랑스가 중국이 필요한 물자를 제공하는 대신, 중국이 호치민에게 베이징 대학 정치학 교수 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Jacques Dalloz, The War in Indo-China 1945-54 (Dublin, 1990), p. 169 ;  Short, Anthony (1998) 'Origins and Alternatives: Comments, Counter-Facts and Commitments', in P. Lowe (ed.), The Vietnam War (Basingstoke: Macmillan).20. 

이것이 리슐리외 추기경의 후손 외무장관의 카드라 할 수 있는가? ㅠㅠ

아마도 20세기 최고의 프랑스 인재들은 마른,솜,파스샹달의 전선이나, 제2차세계대전을 통해서 휴거가 된 듯 하다. 






덧글

  • 한쓰 2020/04/28 08:43 # 답글

    ???:"그 콧수염놈이 미술가로 대성했으면 그런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것을...
    그래! 얘도 교수로 대성하게 진로를 틀어 주자!"
  • 파리13구 2020/04/28 08:48 #

    파리 평화협상에서
    베트남의 레득토가 키신저에게 베이징 대학 국제정치학 교수 직을 제안했고,
    키신저는 레득토에서 하버드 대학 맑스주의 경제학 교수을 제안했습니다. ㅎㅎ
  • 함부르거 2020/04/28 15:44 # 답글

    보통 상대의 목표를 오판하면 저런 어처구니 없는 협상전략이 나오게 되죠. 프랑스인들에겐 저때까지도 베트남과 중국이 우습게 보였나 봅니다.
  • 파리13구 2020/04/28 16:47 #

    외교부 하급도 아니라, 장관이 이 정도면요...ㅠㅠ
  • 포스21 2020/04/28 22:43 #

    아무래도 시대를 19세기 ... 정도로 착각한 모양이네요. 그당시에는 프랑스가 맘껏 활개 칠수 있었죠. 거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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