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의 베트남전, 미국과 중국의 모두스 비벤디?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1965년 이후의 미국의 베트남전 확대 개입에서, 미국이 북베트남을 침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주미 소련 대사 아나톨리 도브리닌에 따르면, 1966년 6월에 존슨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 월트 로스토우가 도브리닌에게, 워싱턴과 베이징 간의 암묵적인 타협,즉 모두스 비벤디를 공개했다고 한다. 즉 "미국이 중국을 공격하지 않고, 중국 본토를 폭격하지 않으면, 중국은 적어도 군대를 동원해서 베트남전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65년,  3월의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지상군 파병을 직후로, 중국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미국이 북베트남을 지상으로 침략하면, 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을 초래할 것이란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에 미국은 바르샤바에서의 대사급 미중 접촉을 통해서, 북베트남을 파괴하지 않을 것이며, 중국 본토를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 약속했다. 

이렇게, 1965년말과 66년초 워싱턴과 베이징은 베트남전과 관련된 일종의 모두스 비벤디를 만들게 되었다. 각자가 베트남전 개입의 규모와 한계를 넘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즉 미국이 북베트남과 중국을 침략하지 않는 대신, 베이징은 분쟁에 대한 군사 개입을 제한한다는 타협이었다. 

존 가버에 따르면, 워싱턴이 베트남전에 대한 단계적 개입 확대와 17도 이북의 베트남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게 만들면서, 베이징은 미국에 대한 하노이의 궁극적 승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고 평했다.


참고-

Qiang Zhai, China and the Vietnam Wars, 1950-1975,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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