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베트남의 토지개혁과 호치민 Le monde


토지개혁은 일반적으로 부유한 지주로부터 토지를 몰수해서 가난한 농민에게 재분배하는 것을 말한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1946-1954) 동안, 베트민은 프랑스에 저항하여 지지확보를 위해서 계급투쟁의 교리를 주장했다. 토지개혁은 계급투쟁이라는 공산주의의 원칙이 베트남에 적용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처음에 베트민은 프랑스에 부역한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했지만, 베트민을 지지한 지주들에게는 지대를 낮추라고만 요구했다. 

하지만 1953년, 매우 급진적인 토지개혁 운동이 시작되었다. 홍강 북쪽의 타이 응우옌주 Thai Nguyen Province 에서 시작된 토지개혁은 탄호아와 닌빈주 Thanh Hoa and Ninh Binh provinces 에서 보다 과격했다. 토지개혁 때문에 북베트난의 수천명의 비-공산주의 계열 간부들이 베트민에서 탈퇴했다. 1954년 제네바 협정 이후 잠시 중단된 토지개혁은 1955년 중반부터 1956년 9월까지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토지개혁 운동이 급진화함에 따라 실제의 공식 정의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지주 계급으로 분류되었고, 베트민 촌락 지도부 내에서 지주 색출의 광풍이 불었다. 심지어 18 에이커의 땅을 소유한 사람도 지주로 분류되었다. 평균적으로 촌락 당, 두 명의 지주 혹은 반동분자가 처형당했다. 희생자들은 처행부대에 의해 사살되고, 돌에 맞았다. 몇몇 사람은 굶어죽기도 했다.

토지개혁 운동은 3630개 촌락에서 실시되어, 최소 8000명의 지주가 처형되었다. 하지만 많은 지주들이 재교육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1956년 11월 2일, 토지개혁에 반대하는 반란이 응에안성에서 발생했다. 이것이 특히 호치민에게 충격을 주었다. 응에안성은 그의 고향이자 공산주의의 핵심 지역이었다. 정부는 인민군 325사단을 투입, 반란을 진압했다.

호치민은 이제 농민 보다는 정책을 바꾸는 것이 쉽다고 결론내렸다. 북베트남 지도부는 오류 시정을 시작했다. 적의 대리인으로 허위로 고발당한 베트민 촌락 지도자들이 복권되었고, 박탈당한 토지도 돌려주었다. 

호치민의 책임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토지개혁부 차관 호비엣탕은 재교육 수용소에 수감되었고, 쯔엉친은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에서 물러나 인민의회 의장으로 좌천되었다.    


출처-

Spencer C. Tucker(ed.) THE ENCYCLOPEDIA OF THE VIETNAM WAR -A Political, Social, and Military History, Second Edition,ABC-CLIO, LLC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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