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년, 주한 대만 대사 내정자 샤오위린의 보고서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중국 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의 장개석은 1949년 5월 대만의 가오슝으로 도피했다.

같은 해 6월 주한 대만 대사 내정자가 모택동 군대의 대만 침공 위협에 대해서 다음 같은 정세 분석 보고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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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대만 대사 내정자 샤오위린 邵毓麟 의 보고서,


한국 전쟁이냐 대만 침공이냐의 문제는 대만 장개석 측의 사활적 문제이기도 했다. 1949629일 한국 주재 대만대사 예정자 샤오위린, 정세보고 (샤오위린 Shao Yulin (1909-1984))는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국제적으로 구립무원의 상태에 빠져가고 있습니다. 만일 중공이 타이완을 먼저 진공해 오면 그 결과는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남한 또한 국제 공산주의자들의 침투와 무장 유격대의 협공으로 어려움에 처할 것입니다. 반대로 국제 공산주의자들이 남한을 먼저 공격한다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이 투입될 것입니다. 그 와중에 우리는 위기에서 벗어날 한줄기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모택동이 한국전쟁 개입 이전에 1950년 여름으로 예정되었던 대만 침공을 단행했다면, 미국 트루먼 행정부의 방침에 따라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미국의 대만 불개입을 통해, 미국과 중공이 데탕트 관계를 구축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택동은 김일성을 지원하면서, 미국을 적으로 만들고, 대만 통일 기회도 날려버렸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전자가 먼저 진행되었다면, 중소관계의 분열을 위한 미국의 쐐기전략이 통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스탈린으로서는 김일성이 먼저 남침을 하고, 한국전쟁에 미군이 개입하여 중공군과 교전하여, 중공과 미국을 원수지간으로 만들때, 스탈린의 미중 관계에 대한 쐐기전략의 실현을 기대할 수 있었다.

 

49년 6월 이후 대만 장개석의 관심사는 중국의 대만 침략이 먼저인가, 북한의 남한 공격이 먼저인가가라는  치명적인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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