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모택동이 "평화공존"을 포기한 이유는?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국력 고갈과 대약진운동의 성공을 위해서 중국은 휴전후 평화공존 정책을 실천하려 했다.

혁명과 전쟁의 신봉자인 모택동 조차도 1957년 11월 모스크바에서의 10월 혁명 40주년 기념식에서, 평화공존 노선을 인정하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국가들이 평화공존 5대원칙을 지킬 것을 주장했다. 중국의 평화공존 5대원칙은 영토 통일성과 주권의 상호 존중, 불가침, 상대방 내정 불간섭, 평등과 상호 이익, 평화 공존이었다.

그런데, 1960년 모택동이 평화공존 5대원칙을 파기했다. 수정주의자 흐루쇼프의 평화공존 노선에 대한 반감과 대약진운동의 성과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국내의 대약진운동은 국제적 평화공존을 위한 전제였다.

마오는 평화공존이 더이상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 예로 쿠바,알제리,필리핀,파라과이에서의 게릴라전쟁을 들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국가 사이에서, 모택동은 평화공존이 아닌, 냉전의 공존 Cold War coexistence 이 존재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사회주의 국가가 자본주의 국가와 공존할 수 있고, 평화롭게 경쟁할 수 있다는 발상은 무의미하다는 것이었다. 

마오의 결론은, 냉전의 공존은 국제적,국내적 투쟁을 특징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출처-

Yang Kuisong, Changes in Mao Zedong's Attitude toward the Indochina War, 1949– 1973, Cold War International History Project Working Paper 34,2002, 19.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2018 대표이글루_history

2019 대표이글루_역사

방문자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