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러일전쟁과 카이저 그리고 프랑스?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러일전쟁 발발을 즈음한 시기에, 영국과 독일은 각각 러시아를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유럽에서 영독의 패권 경쟁이 심화된 까닭에서 였다. 

카이저에게 러일전쟁은 러불동맹 약화를 위한 기회였다. 1904년 4월 영불협상을 체결한 프랑스에게 전략적 선택을 강요하게 만들었다. 프랑스는 러불동맹을 바탕으로, 독일이 주도하는 러시아-독일 진영에 가담해야 하는가, 아니면 러불동맹에서 이탈하여, 영국과 손을 잡아 독일-러시아 진영과 각을 세워야 하는가 라는 선택에 진면했다. 후자의 경우, 프랑스는 유럽 대륙에서 고립되고, 자신이 약화되고, 독일의 먹잇감이 될 위험에 노출될 것이었다. 

당시에 카이저는 주독 러시아 대사와의 열띤 대화를 통해, 독일은 러시아와의 동맹을 원하며, 이는 영국에 대한 공포에 기초한 것이며, 동맹을 위해서 라면 독일은 심지어 오스트리아를 희생시킬 준비가 되었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출처-
John Albert White, Transition to Global Rivalry: Alliance Diplomacy and the Quadruple Entente, 1895-1907. Cambridge University Press,2002. 101.

따라서 러일전쟁은 카이저에게, 독일-러시아 동맹을 통해서,

영불협상과 러불동맹에 동시에 쐐기를 박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카이저는 세계적인 독일 포위망을 분쇄하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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