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을 러일 양국의 문제로 볼 수 없는 이유?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역사를 세계사적 시각을 가지고 봐야 하는 이유는 러일전쟁의 기원을 봐도 알 수 있다. 

러일전쟁의 기원과 관련해서 보통 1903년 8월의 러일협상을 다룬다. 

하지만, 당시에 동시에 진행 중이던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영국과 러시아의 협상에 대해서는 잘 언급되지 않는다. 

일본의 동맹국 영국은 러일협상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만약 러일협상이 성공했다면, 영국은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었다. 만주-한반도 교환론에 기초한 러일협상의 성공은, 러시아 남하 저지의 동반자로서의 일본의 가치를 하락시킬 것이었다. 극동의 위기를 해결한 러시아로서는 영국과의 세계 다른 지역에 대한 협상의 시급함이 저하되어, 영러협상의 동기가 저하되거나 무의미해 졌을 것이다. 또한 러일 협상 성공에 따른, 만주에서의 문호폐쇄는 영일동맹과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초래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영국이 러일협상에 대해 개입할 수 밖에 없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러일협상을 양국사의 관점에서 볼 수 없는 것이다. 

1903년 러일협상과 이후의 러일전쟁 역사는 세계사적 시각, 즉 영국,독일,미국,프랑스 등의 관련 국가들의 입장과 시각을 고려해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러일, 영불, 영러 관계를 동시에 입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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