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러불동맹과 영불협상에 대한 카이저의 공격?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카이저 빌헬름 2세,

[모로코 위기]

러일전쟁,영불협상 그리고 모로코 위기? 모로코 위기는 러일동맹과 유럽의 국제정세를 동시에 고려해야 이해할 수 있다.

1905년의 모로코 위기는 국제사회의 왕따 위기에 직면한 독일 카이저의 돌파 노력이었다.

러일전쟁의 배경에는, 독일이 러시아의 극동 진출을 지원한 정책이 있었다. 러시아의 관심을 동아시아로 돌려서, 유럽에서 멀어지게 만든다는 것이 독일의 러시아 정책 기조였다. 유럽에서 러불동맹의 힘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였다. 

러일전쟁 발발과 더불어 등장한 영불협상은 독일 안보에 대한 위협이었다. 독일의 입장에서 영불협상에 쐐기를 박는 것이 필요했다. 

1905년 모로코 위기는 독일에게 러불동맹과 영불협상 무력화를 위한 양날의 검이었고, 유럽에서 고립된 것은 독일이 아니라 프랑스임을 보여주려 했던 사건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러일전쟁 때문에 프랑스를 지원할 수 없었다. 영불협상에도 불구하고, 영국도 프랑스의 식민지 이권 때문에 독일과 전쟁을 감당할 의지와 능력이 결여된 상태였다. 독일 육군의 프랑스 동부 공격에 대해서 영국 해군이 도울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독일군의 슐리펜은 1905년 3월을 프랑스에 대한 예방전쟁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보았다. 프랑스의 동맹국 러시아가 극동에서의 전쟁이라는 수렁에 빠져있었고, 프랑스가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프랑스에 대한 예방전쟁을 위한 절호의 시기가 도래했다고 슐리펜이 판단했다.

모로코 위기에서의 카이저의 논리는 모로코 문호개방이었다. 프랑스의 모로코 문호폐쇄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호개방이라는 관점에서 독일은 미국 루스벨트의 지지를 기대했다. 

모로코 위기가 한창일 동안, 루스벨트 대통령은 즉시 위기에 주목했다. 영불협상에도 불구하고, 만약 독일 육군이 프랑스 국경을 향해 진격한다면, 영국 해군이 프랑스를 실질적으로 도울 수는 없었다. 

루스벨트는 독불전쟁으로, 러시아와 일본의 평화 협상을 망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세계적 규모의 분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었다. 

6월 25일, 미국 대통령은 독일 대사 슈테른베르크에게, "아무도 이런 하찮은 이유로 전쟁을 시작하는 것을 이해할 수도 용서하지도 않을 것이다."고 경고했다. 그는 카이저의 대사에게, 전쟁의 경우, 프랑스에 대한 원조가 엄청날 것이라 말했다. 

독일 빌헬름2세는 루스벨트의 경고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유럽 문제에 대한 미국의 개입 가능성을 두려워했다.   

이렇게 독일은 1905년에 프랑스에 대한 예방전쟁의 좋은 기회를 날려버렸다. 

-참고

Dennett, Tyler, Roosevelt and the Russo-Japanese War : a critical study of American policy in Eastern Asia in 1902-5,Gloucester, Mass., P. Smith,195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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