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이 미국 황화론에 불을 당겼다."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러일전쟁 이후 미국에서 일본 이민 갈등이 심각해진 것은 황화론과 관련있다. 러일전쟁에서의 일본 승리가 미국 황화론을 자극했다. 

지나 오웬스는 "러일전쟁이 세계 속에서 일본의 지위를 심오하게 변경시켰고, 서양 열강의 일본에 대한 시각도 바꾸어 놓았다. 1895-1905년의 10년 동안, 일본은 서양 공포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인종주의 이데올로기는 서양이 스스로 다른 민족들을 지배하는 정당화 수단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부상이 이 서양의 자기 인식의 핵심을 뒤흔들었고, 서양의 지배를 취약하게 만들었다."

비슷하게, 장-피에르 레만 Jean-Pierre Lehmann 은 1905년이 황화론의 이륙 시점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동양 민족에 대한 서양의 지배 붕괴가 이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레만은 황인종이 주요 전쟁에서 백인종에 이겼다는 것은 당시의 자연법과 역사법칙에 반하는 것이었다고 해석했다. 이 충격이 서양인의 일본인 인식에 영향을 주었다. 

글뤽은 러시아의 패배가 서양에서의 황화론의 거대한 등장을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승리가 곧 황화론의 부상을 유발했다고 한다. 일본이 중국 군사력을 발전시킬 것이며, 중국이 효과적인 재정,교육,정부 기구를 가지게 도울 것이고, 결국 4억의 인구를 무적으로 만들 것이다. 이렇게 손을 잡은 중국과 일본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이런 전망이 미국과 유럽에게 즉시 위험이 되었다. 진정으로 이것이 그들이 두려워하는 황화론이다."

- Gulick, Sydney Lewis, The White Peril in the Far East. An Interpretation of the Significance of the Russo-Japanese War (London and New York, 1905). 174.

James Nelson, An Unwelcome Empire: Japanese Imperialism as the Yellow Peril in Britain and the United States, 78 재인용.

 
- 러일전쟁이 미국의 반일 종족주의에 불을 당겼다는 것이다.

미국의 반일 종족주의와 일본의 반미주의는 인종갈등으로서의 태평양 전쟁의 이념적 토대가 될 것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