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나폴레옹 전쟁과 러일전쟁의 차이는?"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클라우제비츠에 따르면, 포에니 전쟁에서의 한니발의 실책은 전쟁을 끝낼 기회를 놓친 것이다. 독일의 전쟁술의 대가는 전쟁을 끝내기 위한 최적의 순간을 '승리의 한계 정점 culminating point of victory '으로 정의했다. 한니발은 그 정점에서 전쟁을 끝내지 못했다. 한니발은 로마를 멸망시킨다는 무모한 목표에 집착했던 모양이다.

한니발의 실수를 나폴레옹이 반복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클라우제비츠에게 전쟁은 다른 수단을 통한 정치였다. 즉 전쟁은 국가정책의 수단이었다. 전쟁은 제한적이었고, 적의 파괴라기 보다는 정책 실현을 위한 물리적 수단이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에게 전쟁이란, 정책이 아닌 정복의 수단이었다. 프랑스 황제에게 전쟁은 무제한적이며, 적을 파멸로 몰아, 지배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니발과 나폴레옹의 전쟁과 달리, 메이지 시대 일본의 러일전쟁은 전쟁을 끝내야 할 때, 즉 승리의 한계 정점 culminating point of victory 을 잘 잡았다. 일본 육군은 모스크바 점령을 통한 러시아 제국 타도 같은 무모한 목표를 가지지 않았다. 

실제로 포츠머스 평화협상에서 러시아 측의 논리가 이와 상통했다. 러시아가 전쟁에서 진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일본군이 모스크바는 커녕, 바이칼 호수 근처까지 오지않은 이상, 자신은 전쟁에서 진 것이 아니고, 따라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할 수 없다는 것이 러시아 측의 주장이었다.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정책 목표는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의화단의 난 이후 만주를 무력으로 점령한 러시아를 몰아내고, 만주에서의 문호개방을 수호하는 것이었다. 즉 전쟁의 목표가 적의 타도,정복이 아닌, 문호개방의 수호라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러일전쟁은 클라우제비츠적이었다. 

러일전쟁을 계기로, 일본제국의 전쟁 개념이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러일전쟁을 분수령으로, 이전까지의 전쟁이 클라우제비츠적이었다면, 이후 일제의 전쟁은 나폴레옹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일련의 침략전쟁을 도발했고, 전쟁은 정책이 아닌 정복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이는 주변국들을 일본에 대항해 결집시키고, 따라서 일본은 국제사회의 왕따로 몰아갔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라기 보다는 적의 궤멸을 위한 것이었다. 이는 일본의 국력의 한계를 넘어선 목표였다. 

시바 료타로가 좋은 메이지와 나쁜 쇼와를 구별했다면, 이는 일본 제국의 전쟁이 클라우제비츠에서 나폴레옹으로 이행 탓으로 볼 수 있다. 즉 전쟁이 정책의 수단에서 정복의 수단으로 변질되면서, 일본은 패망으로 질주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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