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조지 캐넌,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실책은?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역사상 중요한 조지 캐넌은 두 명이다. 냉전 봉쇄정책의 아버지 조지 캐넌이 있고, 그의 친척인 탐험가 조지 캐넌이 있다. 그는 1845년 생이다. 공교롭게 두 사람은 생일이 같다. 2월 16일.

냉전사의 대가 개디스 교수에 따르면, 매학기 마다 조지 캐넌 리포트 숙제를 내면, 꼭 몇 명은 냉전 전략의 대가가 아니라 극동 탐험가 조지 캐넌을 조사해 온다고 한다. ㅎㅎ

러일전쟁 당시 조지 캐넌은 일본 도쿄에 있었고,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전쟁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는 관계였다. 

1905년 9월 17일, 도쿄의 조지 캐넌이 하비야 폭동을 두둔하면서, 루스벨트의 처신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다. "일본의 평화의 칼"

"내 생각에, 일본 뿐만 아니라 러시아를 위해서도, 루스벨트 대통령이 평화 회담 제안을 전쟁의 종결 때까지 기다렸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일본 육군의 오야마 원수가 리네비치 장군의 러시아 육군을 패배시켰을 것이다. 

그랬다면, 러시아의 자유주의 세력이 실질 권력을 장악, 통치권을 행사했을 것이고, 이는 영구 평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전쟁의 압박에서 자유가 된 짜르와 그 관료들은 러시아 자유주의파에게 제시한 허위 양보 마저도 철회할 수 있게 되었고, 이번 평화로 다음 전쟁을 예감한 일본 국민들은 불만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Dennett, Tyler, Roosevelt and the Russo-Japanese War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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