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인도 총독부와 일본 제국의 갈등?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인도 시인 타고르와 그의 일본인 친구들>

러일전쟁 이후 많은 인도 학생들이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그들은 학문적 동기 이외에도, 일본에서 인도 민족주의 운동의 대의를 알리려 노력했다. 이들 유학생들의 활동이 결실을 거두어, 일본의 정치 지도자 오쿠마 공 등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오쿠마는 영국의 인도 지배를 비난했다. 그는 인도인 3억명이 유럽인들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고, 일본의 보호를 요청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 기업가들이 인도와의 무역에 보다 관심을 가져서, 인도의 국산품 애용 운동의 성공을 도와달라고 요구했다.

인도의 영국 총독부는 일본이 인도의 영국 지배를 비난하는 것에 분노했고, 일본 정부에 공식 항의했다. 영국 대사가 하야시에게 오쿠마의 발언을 문제삼았다. 이에 일본 정부는 이것이 오쿠마의 개인적 일탈이라 변명했다. 런던의 본토 정부에 따르면, 일본은 영일동맹에 충실하며, 인도 민족주의 운동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영국 총독부를 달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캘커타의 인도 정부는 일본을 통치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물론 인도 내정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직접 개입은 없었지만, 일본의 인도 유학생들과 인도 독립 혁명가들이 일본의 원조를 기대했고, 그들의 활동이 일본의 범-아시아주의 운동과 연계되어 있다는 의심은 점점 고조되었다. 


출처-

Rotem Kowner(ed.),The Impact of the Russo-Japanese War, Routledge,2007. 247.






덧글

  • 꾀죄죄한 하프물범 2019/10/11 00:23 # 답글

    갑신정변 때 개화당 인사들을 뒤통수 치고 도망간 다케조에 당시 공사가 교수 노릇할 때인 1900년대 말에는 일본의 인도인 추방 조치(자세한 곡절은 교양강의 때 잠깐 들은 거라 기억이 안 납니다.)에 반발해 '흑인읍'이란 제목의 한시를 지었다고 들었습니다. 내용을 보니 아시아주의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동정하고 있어서 헛웃음이 나더군요..
  • 파리13구 2019/10/11 00:55 #

    ^^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