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1914년 이전에 세계대전 발발 예상지는 태평양이었지 유럽이 아니었다.
1907년 태평양 일대에서 일본 이민이 미일 갈등을 증폭시켰다. 미일 갈등을 이용하여, 독일은 미일 전쟁이 불가피할 것이라 주장했다. 그리고 일본과 전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미국은 일본과 동맹인 영국과 멀어져야 한다고 독일이 재촉했다. 황화론을 이데올로기로 독일은 독일과 미국의 연대를 주장했다.
1907년, 독일에서는 1907년 미일전쟁의 해 Der japanisch-amerikanische Krieg des Jahres 1907 라는 소책자가 발간되었다.
책자에 따르면, 일본은 필리핀 정복을 위해서 미국과 싸우고자 했다. 전쟁 승리를 통해 일본은 미국에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요구할 것이고, 이를 통해서 자신의 재정적 곤경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일본은 미국의 서해안에 군대를 상륙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음모는 영일동맹 덕에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일본 외교의 거대한 성공은 일본이 상처받지않은 미국과 전쟁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라는 것이다. 영국은 다른 나라가 미국을 공격하는 것을 반대할 것이지만, 단 한 나라, 즉 영국이 지난 수년 동안 우호관계를 맺어왔고, 공동의 유산을 가진 가까운 나라인 동맹국 일본이 미국을 공격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독일의 미일전쟁론은 미국 여론을 선동하기 위해서 였다. 이는 영미 관계 이간질을 목표로 했다.
Rotem Kowner(ed.),The Impact of the Russo-Japanese War, Routledge,2007. 11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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