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러일전쟁에 대한 영국의 예상은?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전쟁 발발 이전에, 영국 정부는 러일전쟁을 어떻게 예상했을까?

1903년 12월, 러일전쟁 위기가 고조되자 영국 정부는 대책마련에 부심했다. 

영국 정부의 대부분 장관들은 일본의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일본이 러시아에게 격파될 것이라 우려했다.

영국 내각에서 러일전쟁에 대한 비관적 전망에 대한 유일한 반대자는 총리 아서 벨푸어 Arthur Balfour였다. 물론 총리가 일본에 대해 특별히 높은 희망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 나라가 동아시아에서 세력으로 제거될 동안, 러시아도 마찬가지로 녹초가 될 것이라 주장했다. 

외무장관 랜스다운과 나머지 장관들은 일본의 패배가 동아시아에서의 영국의 이익, 영국의 위신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장관들은 영국이 전쟁에 말려들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영일동맹이라는 틀 혹은 영국 여론이 동맹국 일본을 파멸로부터 구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할 가능성에 대해 고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벨푸어는 러일전쟁은 밝은 면에 주목하고자 했다. 그의 사고는 전쟁을 국제적 시각에서 바라본 것이었다. 영러대결의 관점에서, 총리는 세계의 다른 곳에서의 러시아의 위협에 대해 주목했다. 특히 인도와 페르시아. 그는 일본의 끊임없는 위협에 의해서 러시아의 힘이 동아시아에 집중된다면, 영국은 보다 중요한 다른 지역에서 러시아를 더 쉽게 상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

벨푸어는 러일전쟁이 장기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러시아가 태평양에 해군력을 집중하면, 일본에 대해 수의 우위를 점하게 된다. 해상 수송선이 위협받기 때문에 ,일본은 한국에서 지상전을 추진할 수 없다. 하지만 힘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일본을 침공할 수 없으며, 해상 봉쇄로 일본이 무릎을 꿇게 만들 수 없다. 러시아의 일본 본토 공격은 불가능한 군사 작전이 될 것이었고, 후자는 일본의 자급자족 능력과 동아시아의 영국 해군력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다. 2)

따라서 아서 벨푸어에 따르면, 러일전쟁은 긴 교착상태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심지어 일본이 패한다고 하더라도, 영국은 동아시아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러시아를 봉쇄하는데 최소한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상의 전망하에서  영국 정부는 러일전쟁에 대한 정책 기조를 이렇게 정했다.  

1) 영국은 만주와 한국에서의 개입을 회피해야 하며, 이곳은 영국의 전통적 이익의 일부가 아니다. 
2) 일본과의 동맹은 영국의 중립만을 요구할 뿐이니, 영국은 엄정 중립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
3) 영국은 차관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며, 차관에 대한 보증도 하지 않으며, 장래의 재정 원조의 본질에 대한 양국 정부의 개별 조정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3)

1) Timothy S. Cooper, Anglo-Saxons and Orientals: British-American Interaction over East Asia, 1898-1914, 89.

2) Rotem Kowner(ed.),The Impact of the Russo-Japanese War, Routledge,2007. 95

3) Ian Nish ,The Origins of the Russo-Japanese War (Origins Of Modern Wars),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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