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과 아시아계 이민문제?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황화론]

러일전쟁과 인종문제

인종이란 관점에서, 러일전쟁은 근대 전쟁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동양의,비백인 국가가 서양의,백인 국가에 승리를 거둔 사건이었다. 이는 서양인, 특히 독일인들의 황화론을 자극했다. 러일전쟁의 충격은 미국으로 확산, 미국 서해안, 특히 캘리포니아에서 일본 이민 배척운동을 고조시켰다. 

러일전쟁 직후, 일본인 이민에 반하는 미국의 조치가 강화되었다. 처음에는 환영받았지만, 중국계,일본계 이민자들은 19세기말에 백인의 반대에 직면했고, 특히 캘리포니아에서 그랬다. 어느 정도는 중국의 묵인 하에, 미국은 이주 노동자의 유입을 규제했고, 1900년 이후 그 규제는 영구적인 것이 되었다.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가 황화론 Yellow Peril 에 대한 공포를 고조시켰다. 이 공포가 이민 규제에 대한 정치적 요구를 강화했다. 

1906년 10월, 샌프란시스코 교육청이 일본,중국,한국계 아동에 대한 격리 교육을 명했다. 이에 일본정부가 항의하자,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1907년에 신사협정을 제안했고, 협정은 격리교육 명령을 철회하는 대신에 일본정부가 미국에 대한 일본인 이민자의 수를 엄격히 규제할 것을 주장했다. 

일본인 이민자에 대한 미일 갈등은 1905년-1945년 동안의 미일 관계 악화의 초기 단계로 간주된다.  


참고-

Rotem Kowner, Historical Dictionary of the Russo-Japanese War, The Scarecrow Press,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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