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마르크의 러시아 정책과 아시아?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독일통일 이후 비스마르크가 복수심의 불타는 프랑스의 해외진출을 적극 장려한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프랑스가 국력을 독일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해외에서 소진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렇게 서부 국경의 안전을 도모한 비스마르크는 동쪽의 위협인 러시아를 어떻게 상대했을까? 오스트리아와 함께 러시아를 3제동맹이라는 틀 속에서 관리한 것과 더불어, 비스마르크는 러시아의 아시아 진출을 장려했다. 러시아가 복수심에 불타는 프랑스와 손을 잡아, 독일을 동과 서에서 협공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였다.

독일통일 이후 비스마르크가 "러시아는 서방세계에서 할 일이 없다. 러시아의 사명은 아시아에 있다. 그곳에서 러시아는 문명을 대변한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 였다. 1)

비스마르크의 러시아 정책을 한국에 적용한 것이 바로 독일인 외교고문 묄렌도르프였다. 1884년 묄렌도르프는 한러수교를 적극 주선했다. 독일인 묄렌도르프가 한러수교를 주선한 것은 유럽에서의 프랑스 고립이라는 비스마르크 외교를 위해서, 러시아의 관심을 유럽에서 멀어지고, 동아시아로 돌리게 만들기 위한 전략을 위해서 였다.

묄렌도르프를 통해 비스마르크의 독일은 “러시아 곰을 동아시아 목장으로 유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1) 강성학,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사무라이 :러일전쟁의 외교와 군사전략,고려대학교 출판부, 1999. 274. 

2) 말로제모프, 러시아의 동아시아 정책,지식산업사, 2002.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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