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마르크, "혁명적 시대의 보수주의자!"
카이저 빌헬름2세는 식민지를 원했고, 이를 위해서는 강한 해군이 필요했다.
영국 함대가 아무런 저항없이 독일에 상륙할 수 있다는 공포 해결을 위해서 독일은 충분히 강한 해군이 필요하다는 카이저의 말에
비스마르크는 "만일 영국인들이 우리 땅에 상륙한다면 나는 그들을 체포해 버릴 겁니다."라 답했다.
- 강성학,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사무라이 :러일전쟁의 외교와 군사전략,고려대학교 출판부, 1999. 64-65.
만약 독일이 식민지와 해군건설에 투입할 자원을 육군에 더 투자했다면,
제1차세계대전은 어떻게 변했을까? ㅠㅠ













덧글
하지만 비스마르크는 답변 당시 영국육군의 주요 동원력이던 인도제국육군을 빼먹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겁니다. 상비된 인도군까지 포함하면 영국상비육군의 총수는 독일육군과 거의 동수를 이루니 말입니다.
제국의 총리로서 비스마르크는 부정확해진 예전 지식에 근거해서 밉쌀맞은 청년황제에게 저 말로 비아냥을 저질렀고, 조부처럼 총리 말을 고분고분 따를 생각은 없던 황제는 참다참다 기회가 오자 비스마르크에게 진절머리를 치는 대다수 여론을 등에 업은 제국의회의 지원을 받아내서 비스마르크를 해임했지요.
결국 비스마르크의 답변은 제국의 총리로서는 결함이 많은 발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1913년 3차 함대법 성립과 동 시기에 육군확장을 위한 예산이 제국의회의 승인을 받았는데, 이 때 소 몰트케와 루덴도르프가 진행한 슐리펜 계획 수정도 마무리 되었습니다. 아무리 원안을 개악시킨 것으로 악명높은 수정안이라지만, 그래도 우익에 예비로 군단 3개를 추가하는 것은 필요해서 군단 3개의 추가편성 예산을 참모본부가 육군성에 요청했는데, 융커 출신 육군장관이 "이 이상의 육군 증강은 가뜩이나 믿을 수 있는 융커 출신이 부족한 육군 장교단에 불순분자인 부르조아가 대량으로 유입된다"면서 반대해서 아예 제국의회에 예산 제출조차 안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국의회 분위기는 사민당조차 주류파는 군의 팽창에 호의적이라 충분히 3개 군단 편성 예산 획득은 가능했을 거라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