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비스마르크 실각의 세계사적 의미는?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강성학은 비스마르크 실각을 이렇게 해석했다.

1890년 3월 그 “철의 재상” 아니 “평화의 수호자"가 실각하자 솔즈베리 (Salisbury) 영국 외무장관은 “비스마르크의 실각은 그 영향을 유럽 모든 곳에서 느끼게 될 엄청난 재난이다"라고 말했다. 비스마르크는 영국에 아주 도움이 되는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당시 많은 정치가들과는 달리 그는 식민지 확장에 별로 가치를 두지 않았다. 독일을 위해 식민지 획득을 요구 하는 독일인들에게 “당신의 아프리카 지도는 아주 근사하다. 그러나 나의 아프리카 지도는 여기 유럽에 있다. 여기에 러시아가 있고 여기에 프랑스가 있다. 그리고 여기 그 가운데에 우리가 있다. 이것이 나의 아프리카 지도이다" 라고 말했다. 그의 진심을 의심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열정과 책임감 그리고 균형감각의 지혜를 갖춘 보기 드문 정치가였다. 
비스마르크의 독일통일은 놀라운 업적이었다. 그러나 통일 독일제국의 출현으로 부숴진 유럽의 국제체제 속에서 새로운 독일의 위치를 견고히 하고 독일이 평화와 번영 속에서 살 수 있는 새로운 국제 질서를 창조하고 유지시킨 그의 능력은 훨씬 더 놀라운 것이었다. 헨리 키신저 Henry Kissinger)의 말처럼 그는 진실로 백색혁명가 (White Revolutionary)였다. 1871년 이후부터 그가 실각할 때까지 유럽에는 강대국 간에 전쟁이 없었으며 1890년에 그가 실각한 후에도 그의 후임자들이 그의 정책을 뒤집고 그동안 수립한 체제를 왜곡시킴으로써 전쟁에 빠져들기까지는 또 다른 4반세기가 걸렸다. 1871년에서 1914년까지 유럽은 약 반세기의 긴 평화를 유지했다. 


강성학,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사무라이 :러일전쟁의 외교와 군사전략, 40-41.






덧글

  • 파파라치 2019/09/25 09:11 # 답글

    존 미어샤이머에 의하면 독일이 양면전을 수행해도 괜찮겠다는 판단을 내릴 정도로 국력이 신장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고 합니다. 그전에는 전쟁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말이죠.
  • 파리13구 2019/09/25 09:14 #

    판단의 근거는 뭐죠?
  • 파파라치 2019/09/25 11:09 #

    국력을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측정할 경우, 1900년 이후 독일의 국력이 프랑스와 러시아를 합한 것과 동등한 수준에 올라섰다는 근거입니다.

    자세한 것은 그의 저서 "강대국 정치의 비극"을 참조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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