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화단의 난과 일본 제국 팽창의 딜레마?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남쪽이냐, 북쪽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피침략국 내정의 혼란은 제국주의의 손쉬운 먹잇감이다. 의화단의 난에 대한 일본의 입장이 바로 그것이었다. 의화단 난 진압을 구실로, 일본은 대규모 병력을 중국에 파병했고, 이 군사력으로 중국에서의 이권을 얻을 수 있었다. 

의화단의 난의 진압 직후, 일본은 우선 화남 지방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연합군이 북경에 진입했을 때, 일본 정부는 타이완 총독 고다마에게 , 바다 건너 본토의 푸젠성의 아모이 (샤먼)으로 군대 파병을 명령했다. 원정의 목적으로 중국 주민들에게, 외국인을 위협하는 행동은 무모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파병은 실현되지 못하고, 취소되었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혼란을 틈타, 남중국에서의 이권 확보를 스스로 포기한 것인가?

이언 니시에 따르면, 의화단의 난을 계기로, 일본은 동시아에서의 제국의 장기적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일본 제국, 즉 일본 팽창주의의 딜레마란, 중국 본토에서의 남진인가 북진인가의 선택이었다. 만약 제국의 남진한다면, 다른 강대국의 심각한 저항에 지면하지 않을 것이었다. 물론, 영국의 반발은 예상되었다. 양자강과 홍콩 일대를 자신의 중국 세력권으로 하는 영국에게 일본의 남진정책은 달갑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북진한다면, 일본은 만주에서의 러시아와의 충돌이 필연적이었다.

영국 외교의 입장에서, 일본 제국의 팽창을 북쪽으로 돌리는 데, 자신의 극동정책의 사활이 걸렸을 것이다. 

결국, 일본 제국의 선택은 북진이었다. 북진을 통해, 일본은 영국의 호감을 얻었고, 러시아와의 충돌을 필연적으로 만들었다. 남진의 중단으로 일본은 영일동맹을 얻고, 만주에서 러시아 세력 남하 저지의 첨병이 되면서, 미국의 만주 문호개방 정책의 앞잡이가 되었다. 일본은 북진 정책을 통해서, 영국과 미국을 친구로, 러시아를 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러일전쟁의 국제적 갈등관계를 규정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러일전쟁이란, 만주에서의 러시아의 문호폐쇄를 견제하려 원했던 영국과 미국이 일본을 앞잡이로 삼아, 러시아의 남하를 무력으로 저지한 사건이라 해석할 수 있다. 러일전쟁을 즈음하여, 일본 제국의 진출 방향은 남방이 아닌 만주를 향한 북진으로 편향되는 것이 불가피했다. 


참고- 

Ian Nish ,The Origins of the Russo-Japanese War (Origins Of Modern Wars),  Routledge; 1 edition (April 11, 1985) 7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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