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말]독일-프랑스-러시아 관계와 극동?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보불전쟁 이후의 독불 갈등은 동아시아를 비롯한 한국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보불전쟁과 독일 통일 이후 독불관계가 원수가 된 이후, 프랑스는 독일에 대한 복수에 불타올랐다. 

이러한 독불의 적대관계가 양국의 러시아 관계를 규정했고, 이 관계가 러시아의 극동정책에 영향을 주었다. 

최문형에 따르면,

독일은 러시아의 진출 방향을 아시아로 전환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유럽에서 프랑스를 고립시키려고 했는가 하면, 이와 달리 프랑스는 러시아와 제휴해 독일을 동·서에서 협공하려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로서는 러시아와의 동맹 체결이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선결 과제였다.

조선의 외교고문이던 독일인 묄렌도르프가 한러수교를 주선한 것과, 1888년 이후 프랑스가 러시아에게 차관을 제공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 였다. 이 차관을 가지고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만들었고, 이것이 러일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말하자면, 유럽에서의 프랑스 고립을 목표로 한 비스마르크의 대러시아 정책으로, "러시아라는 곰이 동아시아 목장으로 유인" 되었다면, 프랑스 차관을 통해 러시아는 시베리아 철도를 건설, 육군력으로 극동에서의 자신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보불전쟁 이후의 독불 대립이 러시아의 극동 진출을 장려한 꼴이 되었다. 

참고- 

최문형, 러시아의 남하와 일본의 한국 침략, 지식산업사, 2007. 214.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2018 대표이글루_history

2019 대표이글루_역사

방문자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