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불전쟁, 비스마르크 그리고 한국-러시아 수교?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보불전쟁과 독일 통일이라는 유럽 정황이 한국의 역사, 특히 1884년의 한러수교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그 연결고리는 당시 조선의 외교고문이었던 독일인 묄렌도르프였다. (Paul Georg von Möllendorff, 1848~1901) 중국 이홍장의 추천이었다.

1884년 천진주재 러시아 영사 베베르가 방한 하면서 한러수교가 급물살을 탔는데, 이를 주선한 것이 바로 묄렌도르프였다. 이는 그를 한국에 보낸 청의 이홍장의 뜻에 반하는 것이었다. 러시아의 한국 개입이 청의 대한 종주권을 위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홍장을 화나게 만들었음에도 묄렌도르프가 한러 수교를 주선한 이유는 무었이었을까? 장정불 T.F.Tsiang 에 따르면, “묄렌도르프가 러시아라는 곰을 동아시아 목장으로 유인하라는 독일 외무성의 암시를 받았을 것”이라고 한다. 독일 외교관 출신인 그는 결국 독일의 국익을 위해 그와 이홍장의 관계를 자진해서 버린 셈이었다.

보불전쟁 이후 비스마르크의 외교 관심사는 유럽에서 프랑스를 고립시키는 것이었다. 프랑스 고립을 위해서 비스마르크는 프랑스가 러시아에 접근하는 것을 막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동아시아 진출을 부추겨야만 했다. 러시아의 진출 방향이 유럽이 아닌 동아시아로 잡혀야만 독일은 프랑스와 러시아의 협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독일인 묄렌도르프가 한러수교를 주선한 것은 유럽에서의 프랑스 고립이라는 비스마르크 외교를 위해서, 러시아의 관심을 유럽에서 멀어지고, 동아시아로 돌리게 만들기 위한 전략을 위해서 였다는 것이다. 

한국이 러시아에 대한 공포에 근거한 조선책략이라는 외교노선을 겨우 2년 만에 버리고, 러시아와 손을 잡은 것은 바로 이 같은 상화에서 였다. 당시 한국에게 러시아는 청나라 견제세력으로 의미가 있었다.

참고- 

최문형, 러시아의 남하와 일본의 한국 침략, 지식산업사, 2007. 179-180.
 






덧글

  • 2019/09/11 23:34 # 삭제 답글

    한국근대사는 정말 세계사의 일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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