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러시아 부동항 확보의 한계?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극동에서의 러시아 부동항은 획득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려웠는가? 

극동에서 러시아의 부동항 확보는 오랜 숙원이었다. 그것이 쉽지 않았던 이유는 확보 이상으로 그것을 지키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가령, 1897년 러시아 외상 무라비요프가 한국에서의 부동항 획득을 반대한 것은, 한국이 시베리아 횡단철도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에서 였다.

러일전쟁 초기, 여순항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나마 러시아 국경에서 가깝고, 철도로 연결되어 있는 여순 방어가 어려운 상황에서, 한반도에서의 부동항 방어는 더욱 어려운 과제가 되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철도도 없었다. 

러일전쟁에서, 압록강을 돌파하자 마자 일본군은 여순항과 하얼빈 사이의 철도 (남만 지선)를 차단했다. 따라서 여순의 해군 기지와 요새를 지키는 러시아 수비군 5만 5천명이 만주의 러시아 육군으로부터 고립되었다. 


참고-

Richard Charques, The Twilight of Imperial Russia,Oxford University Press,1974. 98.






덧글

  • 역성혁명 2019/09/08 22:02 # 답글

    아무리 러시아의 동방홍차가 찻상에 놓여있어도, 손에 닿지 않으면 마실수도 없겠죠.
  • 파리13구 2019/09/08 22:36 #

    네... ^^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