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조선독립 주장은 왜 친일적이었나?"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조지 포우크- 미국 해군 장교>

청일대립,영러대립 그리고 미국?

어떻게 친일파가 아닌 사람이 친일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친일파만 친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885년 1월, 29세의 미국 해군 중위가 주한 미국 공사관의 수석 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포우크 Foulk 였다. 전임 공사 푸트가 불만을 품고 돌연 사직했지만, 미국 정부는 대리인을 보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포우크가 주한 미국 공사관의 책임자가 되었다. 

포우크가 책임자가 되었을 때, 갑신정변의 실패 이후 개화파와 일본 세력이 한국에서 타도되면서, 중국의 조선에 대한 종주권이 강화된 상태였다. 포우크는 본국으로부터 특별 지시가 없던 만큼, 한미조약의 정신에 따라 행동하려 했다. 조약은 조선을 독립국으로 인정했다. 미국 공사관 책임자로 포우크는 한미조약의 정신, 즉 조선은 독립국이라는 전제에 따라 행동했다. 따라서 그는 조선에 대한 청의 종주권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국제법에 따라 조선 정부를 독립적 주체로 간주해야 한다고 인식했다. 1) 

만약 다른 세력을 배제한 한미관계만을 고려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포우크의 조약 수호 정신은 한국에 유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이후 1885년 1월의 한국에서 청일과 영국-러시아가 대립했다. 

특히 청일대립에서 전자가 종주권을 주장했다면, 후자인 일본은 청국에 대한 조선의 독립을 주장했다. 이 청일 대립은 1894년 청일전쟁이 될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 29세의 포우크의 조선 독립론은 일본에게 유리했다. 포우크의 조선 독립은 청의 對韓종주권을 부정하는 것이 되는 것으로서 실제 내용면에 있어서는 일본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일본도 강화도조약에서 한국의 독립을 주장했던 사실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일 이다. 미국의 對韓정책이 비록 한국의 독립을 지지하기는 하였지만 당시 의 정황은 그것이 한국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반대로 일본의 對韓입장만을 강화시켜 주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2) 

1)Harold J. Noble, The United States and Sino-Korean Relations, 295.

2) 최문형, 제국주의 시대의 열강과 한국, 민음사, 1990. 55.











덧글

  • 역성혁명 2019/08/22 20:56 # 답글

    Bullshit~~! ㅠㅠ
  • 2019/08/23 16:55 # 삭제 답글

    복잡한 현안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저런 결과가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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