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쟁과 러시아?"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러시아는 청일전쟁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막거나 혹은 중재할 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사태를 관망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전쟁 발발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위기감을 특별하게 고조시키지 않았다. 수도의 사교계에서 "나는 한국 보다 치커리에 더 관심이 있다."라는 농담이 회자되었다. 

[이 농담은 불어에서 치커리 la chicoree (시코레) 와 한국 la coree(코레) 가 발음상 유사함을 이용했다.)


Oye, Toward the Rising Sun: Russian Ideologies of Empire and the Path to War with Japan, Northern Illinois University Press,2006. 120.

실제로 짜르 알렉산데르 3세와 그의 외상 기어스의 극동정책 기조는 방관적,방어적이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