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발의 동기와 타나토스?" Le monde

"아베 신조가 동북아에서 왕따를 당했는가?"



7월 29일 경향신문의 이권우의 타나토스적 충동에 사로잡힌 일본 에 따르면,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경제 도발의 심리적 동기는 자멸을 갈망하는 타나토스적 충동이 있다고 한다.

아베의 일본의 동기는 가령, 일본에서 지역활성화 사업에 반대하는 소상인의 심리와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일본도 지방이 황폐해지기는 마찬가지다. 이에 뜻있는 이들이 지역 활성화 사업을 펼치려 하면, 일종의 토호세력 가운데 반대하는 무리가 있다. 그들은 대체로 3대째 내려오는 여관이나 요정의 주인이다. 지역경제가 무너지면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데 상식 밖의 반응을 보인다. 속사정을 살펴보면 이해 가는 면이 있다. 이들은 물려받은 업을 지켜야 한다는 책무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것.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능력이 없지만 스스로 버릴 수는 없으니, 누군가 무너뜨려주길 바라는 숨은 열망이 있었던 셈이다."


 - 문제를 장기사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16세기 이후 눈부신 부상을 이룩해온 일본의 국운이 1945년을 계기로 하방하는 것이 아닐까? 일본은 400년 동안의 성장과 번영의 시대를 마감하고, 16세기 이전의 일본의 부활을 위해 퇴행하는 국가로 전락한 것인가? 

만약 일본이 퇴행하는 국가로, 자살 충동에 사로잡혀 자멸의 도발을 하는 국가 역할을 한다고 할 때,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일본이 타나토스적이라면, 한국은 에로적이 되어야 한다. 일본이 파멸을 원한다면, 한국은 자기보존의 본능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16세기의 일본을 한국의 미래로 만드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에로스적 한국의 선택지는 일본의 퇴행적 도발을 봉쇄,관리하고,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는 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질서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미국은 현상유지 세력이라는 점에서 이해를 같이 한다. 

영원한 부상이란 없다. 16세기 이후 영광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에게 쇠락은 운명일지 모른다. 그 운명을 수용하는 것은 물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이를 아베적 도발을 통해서 반전시키려 하는 것은 의도의 실현 보다는 역효과만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차라리 보리스 존슨의 영국을 통해 배워라. 영국이 브렉시트를 했듯이, 일본도 이번 기회에 탈아입구를 해야한다. 각각 유럽과 아시아에서 왕따를 당한 영국과 일본이 퇴행의 영일동맹을 맺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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