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조선은 아편중독자를 어떻게 벌했나?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조선은 중국에서 아편 중독 문제가 심각함을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에서 아편중독 의심자가 체포되었다. 그는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1848>

 

326

화원 박희영, 아편 흡입사건,


1848(헌종 14) 중국에 다녀온 사신 덕분에 조선 조정은 아편전쟁 이후 중국에서의 아편 중독의 해악에 대해 알게 되었다. 보고에 따르면, 아편 阿片의 해독의 전파가 전년前年 보다 훨씬 심하여져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되고 은화銀貨가 이를 위해 소진되며, 형부刑部各省에서 단속을 아무리 해도 효과가 없다는 놀라운 보고가 있었다.


보고 바로 이틀 후인 326, 의주에서 아편흡입구를 소지하고 들어온 화공 박희영이 체포되었다. 이에 따라 중국으로부터 아편 유입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었다. 하지만 당시 조선 정부가 채용하고 있던 명률 明律 어느 조항에도 아편흡입구를 가지고 있는 사실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었다. 아편흡입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 처벌을 해야만 했는데 적용법률이 문제가 되어 중신들 간의 광범위한 토론이 있었다. 박희영은 체포 당시 아편은 소지하지 않았지만, 흡입을 시도해 본 적은 있다고 자백했다. 법률적 입장에서 신중론자와 아편 폐습의 싹을 자르기 위해 엄벌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대립했다.


결국, 박희영을 먼 섬으로 유배를 보내, 감사위노 減死爲奴,사형을 감하여 종[]으로 삼으라는 판결을 내렸다.



-민두기."19세기후반 조선왕조의 대외위기의식." 동방학지, (1986), 265-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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