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 아편전쟁과 헌종의 인식?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중국과 영국의 군사적 충돌, 즉 아편전쟁에 대한 첫 보고는 1840년 (헌종 6년) 8월 25일, 청에 다녀온 사절을 통해서 였다. 

왕은 수석 사신인 정사 이시인에게, "그곳에 최근 난리가 일어났다는데 들어 본 일이 있는가?" 물었다. 국왕은 이미 다른 채널을 통해서 중영의 군사 충돌 소식을 들었던 모양이다. 

왕의 질문에 대해서 정사는 영길리국(영국)과 청의 군사충돌 소문은 들었지만, 정확하지 못하다고 답했다. 


출처-
민두기."19세기후반 조선왕조의 대외위기의식." 동방학지, (1986) , 262.


-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아편전쟁을 계기로, 조선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대책마련에 서둘러야 했다.

하지만, 조선 엘리트들의 특징은 큰 자극을 받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 

19세기 서세동점과 일본의 부상의 중요 사건을 조선 엘리트들은 어떻게 인식했을까? 그들의 인식과 대응은 어떤 문제를 내포했을까?



덧글

  • 2019/07/26 10:49 # 삭제 답글

    듣는 것만으로 충격적인 소식들일텐데 너무 다른 세상이야기지않을까요?
    왠지 계인이 쳐들어와 미국이 졌다!
    이런 느낌일것 같은데 말이죠.
  • 파리13구 2019/07/26 11:52 #

    역사의 재미가 여기 있습니다.

    조선이 충격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사료 증거가 없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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