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일본과 영국의 조선 구상?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1898년은 유럽 강대국의 중국 해체가 정점에 도달했다. 러시아가 여순과 대련, 독일이 교주만 그리고 영국이 웨이하이웨이를 조차했다. 심지어 이탈리아도 한몫을 챙기려 했지만, 중국이 거절했다. 

이렇게 유럽의 관심이 중국에 집중할 동안, 일본은 한반도 침략에 집중했다. 1898년 러시아와의 타협 덕분에, 말하자면 일본이 여순,대련에 대해 눈감아주는 대신에, 러시아는 한반도 남부에서의 일본의 행동을 묵인한다는 협잡 덕분에, 일본은 열강의 눈치를 보지 않고 조선에 침투했다. 러시아가 중국에 열중할 동안, 일본은 한반도 남부 침략을 위한 길을 정리했다. 

다른 열강은 조선에 큰 관심이 없었고, 일본의 야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였다. 영국의 관심사는 1897년 영국 외무성 차관 커즌이 이렇게 정리했다. "영국은 한국의 영토와 항구가 극동의 세력균형을 교란하기 위한 영토 확장 계획을 위한 기지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혹은 한 강대국이 극동의 바다에서 해상 패권을 가지는데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영국은 조선 정부가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했고, 조선의 독립 능력에 의문을 가졌다. 따라서 영국은 조선의 체제 유지를 위해 적극 개입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조선의 체제가 유지될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영국은 조선을 둘러싼 국제관계에만 관심이 있었고, 다만 조선문제가 자신의 해군,무역의 이익을 위협하거나, 극동의 평화를 파괴시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참고-

I.H. Nish, The Anglo-Japanese Alliance: The Diplomacy of Two Island Empires, 1894-1907 (London, 1985),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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