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관점에서 삼국간섭 이후의 동아시아를 보면?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일본의 시각에서 1895년의 삼국간섭과 1898년 3월의 독일의 교주만, 러시아의 여순,대련 조차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일본은 독일과 러시아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95년의 삼국간섭을 주도한 독일과 러시아는 중국 편을 들면서, 조약에 의해 보장된 일본의 요동반도 획득에 반대했다. 그런 두 나라가 1898년에 중국의 주권을 유린하면서, 삼국간섭에 대한 보상으로 각각 교주만과 여순,대련을 조차한 것은 일본의 분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98년에 당한 것을 일본은 언제 복수하게 될까? 

일본에게 기회가 온 것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었다. 독일은 유럽에서의 전쟁 때문에 동아시아에 개입할 여력이 없었다. 1914년 11월, 일본은 독일령 칭다오를 점령했다. 이렇게 일본은 일본은 칭다오와 자오지 철로를 독일로부터 빼앗았다.

이렇게 1894년의 청일전쟁, 1895년의 삼국간섭, 1898년 독일의 교주만, 러시아의 여순,대련 조차 그리고 1914년 일본의 독일령 칭다오 공격의 역사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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