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미일 전쟁을 경고한 세권의 책...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1906년- 1908년 동안 ,캘리포니아에서의 일본인 이민자 문제로 인해서 미일 갈등이 고조되었다. 미국 서부 해안 뿐만 아니라 캐나다 서부, 즉 브리티시 콜럼비아에서도 반일 감정이 고조되었다.

영국이 머리가 아팠다. 영일동맹이라는 전략적 가치와 앵글로-색슨이 단결하여 일본인을 몰아내자는 이념적 가치 속에서 영국정부의 정책이 갈등했다. 미국과 캐나다가 나서 영국의 공조를 요구했지만, 일본이 동맹국이었기 때문에 영국은 갈등할 수 밖에 없었다. "동맹이냐 인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3년 동안의 미일전쟁의 공포의 결과, 전쟁을 경고한 세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1. 호머 레아, 무지의 용기 Homer Lea, The Valor of Ignorance,1909.

1909년에 레아는 일본이 미국을 공격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진주만 기습 36년 전이었다. 이는 러일전쟁 이후 고조된 미일의 전쟁 공포를 반영했다. 그는 태평양의 각 반대편에 확장하는 제국 일본과 미국이 경쟁하고 있고, 양자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 토마스 밀러드, 미국과 극동문제. 1909년
Millard, Thomas Franklin Fairfax, America and the Far Eastern question, New York, Moffat, Yard and company, 1909.

밀러드는 아시아 본토에 대한 일본의 패권을 미국이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일본 견제를 위해서 중국에서의 문호개방을 고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의 무역에 일본에게 패할 것이다.

3. 피츠패트릭, 국가들간의 분쟁의 도래 혹은 미일 전쟁.
E.H. Fitzpatrick, The Coming Conflict of Nations, or The Japanese-American War (Springfield, IL, 1909)


- 러일 전쟁 이후 태평양 일대에서의 미일 갈등 때문에, 1910년의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에 영향을 준 것으로 봐야 한다. 1905년의 을사 조약 이후 일본이 병합으로 즉시 가지 못한 것은 미국과의 갈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미일 갈등이 봉합되지 않았다면, 일본이 한국을 무단으로 병합했을 때, 미국이 시비를 걸었을지도 모른다. 



덧글

  • 함부르거 2019/07/12 11:07 # 답글

    일본이 한국 때리려면 미국 눈치 봐야 하는 건 10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군요... -_-;;;;
  • 파리13구 2019/07/12 11:09 #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이 한국을 팔아 넘겼다는 식의 인식은 오해라 봅니다.

    미일 전쟁 위기는 1906년 이후의 사건이었고,

    만약 전쟁이 발발했다면, 미국은 한국 문제로 일본에게 시비를 걸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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