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과 영미의 책임 떠넘기기?"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러일전쟁은 만주에 대한 국제 분쟁이었다. 

의화단의 난의 발발 이후, 러시아는 진압을 명분으로 만주에 군대를 파병한 이후, 진압 이후에도 즉시 철군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만주 불법 점거가 만주의 문호개방과 교역의 자유를 주장하는 영국과 미국의 이익과 충돌했다. 

영국은 만주에 대한 러시아의 팽창주의를 견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견제는 소극적이었다. 영국은 이미 세계 도처의 분쟁에 연루되어, 동아시아에서의 개입 여력이 거의 없었다. 

그 대안으로 영국이 추구한 것이 미국과의 공동 개입이었다. 특히 미국이 견제를 주도하고, 주력이 되어야 한다고 영국은 기대했다. 말하자면, 영국에게 러시아 팽창주의 억제의 조건은 개입을 미국이 주도하고, 만주에서 공격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이 경우 영국은 미국의 뒤에서 개입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는 구상이었다.

미국은 영국의 기대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미국의 관점에서, 만주가 자국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곳이 아니었다. 미국 여론도 극동에 대한 무력 개입에 대해서 대체로 무관심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만주 장악 기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나서서 전면 개입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었다. 따라서 미국은 사실상의 방관자로 남기로 했다. 

이렇게 영미가 주저하는 동안, 일본이 만주에서의 러시아 봉쇄의 주력 세력으로 부상했다. 말하자면, 영국과 미국 대신에, 일본이 대러시아 봉쇄정책의 주력이 된 것이었다.


참고-

Timothy S. Cooper, Anglo-Saxons and Orientals: British-American Interaction over East Asia, 1898-1914, A Thesis, University of Edinburgh,2016. 86-87.   

러일전쟁 발발과 더불어,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일본이 우리의 게임을 하는 것"이라 발언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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