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일본의 사할린 포기와 운요호 사건?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한양대의 최문형 교수의 글을 읽다보면, 그 시각의 넓음에 자주 놀라게 된다. 

가령, 운요호 사건에 대한 평범한 연구는 사건 발생의 지점인 강화도 일대에만 시선을 집중한다.

하지만 최문형은 일본이 사할린에서 한 일을 동시에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일본은 1875년 9월 19일 사할린의 난게이에서 정식으로 사할린 양도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바로 이튿날(9월 20일) 운요호 사건을 도발했던 것이다. 사할린 쿠릴열도 교환은 한국 침략을 위한 일본의 정지(整地) 작업임이 분명했다. 영국의 대러시아 견제 정책에 편승한 일본이 이 '교환조약‘을 통해 자국의 한국 침략에 대한 러시아의 묵인을 다시 보장받았던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한국 침략 야욕은 어떤 논리로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운요호 사건만을 가지고 일본의 침략성을 운위해서는 안 되는 연유다." 

출처-
최문형, 한국 근대의 세계사적 이해, 지식산업사, 2010. 42.


-말하자면, 일본의 사할린 양도와 운요호 사건은

러일관계와 러시아,일본의 대한정책의 관점에서 동시에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할린에서의 러일 '데탕트'가 영국을 불안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영국은 일본의 한국 침략을 지지하면서, 일본이 한국에서 러시아와 충돌하게 만들기를 원했지만,

한국 문제에 대해서 러일이 어떤 공조관계를 가지면, 문제가 된다고 보았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영러대결의 관점에서 일본의 운요호 도발을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덧글

  • 2019/07/05 22:09 # 삭제 답글

    이런 시각도 있군요.
    근대사는 세계사적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 파리13구 2019/07/06 02:43 #

    그렇습니다.
  • 2019/07/06 00:27 # 삭제 답글

    그리고 저는 늘 17-18세기 이후 동아시아사는 네덜란드, 러시아까지 포함해서 보아야한다고 생각했는데요.
    19세기는 영국을 포함해야 동아시아사가 제대로 보이겠네요. 이건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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